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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성희롱 실태] 그녀가 ‘성희롱 김부장’을 참는 이유
최고관리자
17-03-12 22:26
6,743
 
▲    ©여성신문



“A씨는 참 피부가 곱다. 맑아 피부가. 아침이슬처럼.”


한 정부부처 산하단체에 근무하는 A씨는 해당부처 실장 B씨 등 일행과 해외출장을 갔다 성희롱에 시달려야 했다. 공식행사 일정을 마치고 가진 술자리에서 B실장은 A씨에게 “남자 많이 따르겠네. 여성스럽네”, “수많은 놈들이 있겠지. 이렇게 피부가 고운데…” 등 성희롱 발언을 쏟아냈다. A씨가 술을 거절하자 B씨는 “내가 업어다 줄께. 아니면 요 앞에서 자”라는 말까지 했다. 출장에서 돌아온 직후 A씨가 기관에 알렸고, B씨는 견책 처분을 받았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C씨는 “너는 회사를 다니냐? 술집을 다니냐?”는 D상무의 옷차림 지적에 성적 굴욕감을 느꼈다. C씨가 문제를 제기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해서야 성희롱한 상무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20대 여성 E씨는 아버지뻘인 60대 F팀장으로부터 “따로 만나자”는 말을 지속적으로 들어야 했다. 수치심을 느꼈지만 회사를 계속 다녀야 했던 E씨는 꾹 참았다. 그러나 F팀장은 “술 마시고 모텔 가자”는 팀장의 말은 참을 수 없자 공식적으로 회사에 사실을 알렸다. E씨는 문제를 일으킨 팀장이 사직서를 제출한 후에야 안도할 수 있었다.


‘직장 내 성희롱’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쓰인지 20여년이 흘렀다. 1993년 국내 첫 직장 내 성희롱 소송인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이 계기였다. 당시에는 교수에게 성희롱 피해를 입고 고발한 피해자의 이름을 따 ‘서울대 우 조교 사건’으로 불렸다. 피해여성은 학교, 국가를 상대로 5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했고, 6년여간의 법정 투쟁 끝에 승소했다.


판결 전까지 성희롱은 그저 남자직원들끼리 웃고 즐기는 ‘농담’으로 취급됐다. 불쾌하고 수치스러워도 ‘모르는 척’ 넘기는 게 ‘여직원의 미덕’이었다. 성희롱을 받아치면 오히려 ‘드세다’ ‘예민하다’는 타박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우씨의 용기로 성희롱은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됐고 관련법도 제정됐다. 그러나 2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직장에서 상사와 동료의 성희롱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사례는 여전히 드물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성희롱 실태분석과 형사정책적 대응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직장인 장인 1150명(여성 698명, 남성 452명)을 대상으로 성희롱에 대한 인식과 현황, 예방에 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35%가 현재 다니는 직장에서 ‘성희롱 행위를 가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남성의 36%, 여성의 34%가 여기에 해당했다. 성희롱 가해 경험률에 성별 차이는 크진 않았지만 가해 유형에선 차이가 드러났다. 남성은 외모·몸매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가 23.5%로 가장 많았고, 음담패설·성적농담(19.7%), 손으로 만지거나 잡으려는 행위(15.8%), 회식에서 술을 따르라는 행위(13.8%), 입맞춤·포옹 등 신체적 접촉행위(13.5%)가 뒤를 이었다. 여성은 외모·몸매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22.0%), 손으로 만지거나 잡으려는 행위(17.4%), 회식에서 술을 따르라는 행위(16.1%), 음담패설·성적농담(15.7%), 성적 사실관계 유포(11.8%)로 신체적 성희롱 가해비율이 여성보다 남성이 더 높았다.


성희롱 피해 경험에 대한 항목에선 응답자의 45% ‘성희롱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남성 35%, 여성 52%가 피해를 겪었다. 특히 여성은 2명 중 1명이 성희롱 피해를 입은 셈이다. 가해자는 80.8%가 남성이었다.


성희롱 피해에 대한 대응방식으로는 ‘특별한 조치 취하지 않고 내버려 뒀다’는 답이 54%(복수응답)로 가장 많았다. ‘성희롱 행위자에게 직접 문제제기 했다’는 응답은 14.4%에 그쳤고, 사내 기구에 신고한 경우는 11.9%, 외부 기구에 신고한 경우는 8.3%에 불과했다. 피해자의 5%는 오히려 회사를 그만 둔 것으로 드러났다. 성희롱 피해자들은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기 보다는 스스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로는 응답자의 45.6%가 ‘상대방과의 관계 때문’이라고 답했다. ‘대응을 해도 달라질 것 같지 않아서’(36.3%),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30.6%) 문제제기하지 않았다는 답변도 많았다.


성희롱 발생 원인으로는 응답자의 79.1%(복수응답)가 ‘가해자에게 내려지는 처벌이 낮아서’라고 답했다. ‘남성 중심적 직장문화’(75.5%), ‘남성의 약한 성평등 인식’(69.8%)이라는 답이 뒤를 이었다. ‘직장 내 여성의 낮은 지위’(62.2%)를 원인으로 꼽는 응답자도 과반을 넘었다.


그러나 직장 내 성희롱을 예방하는 최저선인 성희롱 예방교육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지는 편이다. 응답자의 40.5%는 예방교육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규직은 38.2%, 비정규직은 54.2%%가 교육을 받지 못했다. 교육 만족도는 49.9점(100점 만점)로 낙제점에 가까웠다. 불만족 이유로는 ‘성희롱 예방효과 미미’(51.6%), ‘주변 사람들이 교육에 무관심해서’(31.9%) 등이 꼽혀 예방교육의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많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조사결과에 대해 “비밀보장에 대해 신뢰가 없고 오히려 피해자로서 낙인을 당할 위험이 있으며 신고를 해도 아무런 구제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라며 “피해자가 심각한 피해를 입고도 성희롱 사건을 외현화하지 않으면 성희롱 행위는 암수범죄처럼 지속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제기하는 피해자를 법적 테두리 내에서 보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직장 내 성희롱’ 신고 그 후… 왕따 당하고 자살까지

유명무실한 불이익 금지 조치

회사는 가해자 오히려 감싸고

피해자 명예훼손으로 고소도



▲    ©여성신문


지난해 7월 한국거래소 부산본사에서 일하던 여성 K(35)씨가 자신의 집에서 목숨을 끊었다. 유가족에 따르면 그의 죽음은 같은 부서 팀장의 상습적인 성희롱과 동료 직원들의 집단따돌림에 따른 우울증이 원인이었다.


유가족에 따르면 해당 팀장은 2012년 11월 해외출장지에서 K씨에게 노골적인 음담패설을 했고 이후로도 성희롱은 지속됐다. K씨는 두 차례 회사에 피해 상황을 알렸지만 별다른 조치 없이 사건은 묻혔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한국거래소의 ‘제4차·5차 인사위원회 심의결과’에 따르면 해당 팀장에 의한 성희롱 사실은 확인됐다. 그러나 징계대상자가 피해사실을 인지하고도 적절한 해결 노력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성희롱 가해자는 정직 3개월이라는 솜방망이 징계만 받았다.


K씨의 신고 사실은 곧바로 사내에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료직원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유가족에 따르면 K씨는 동료들의 집단따돌림과 가해자의 보복성 업무지시를 받아야 했다. 급기야 지난해 6월 K씨는 자살 우려가 있다는 정신과의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하고 3개월간의 휴직을 요청했지만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K씨는 성희롱 피해를 입고도 제대로 된 사과는커녕 오히려 ‘왕따’를 당하며 2차 피해를 입었고 이는 안타까운 사고로 이어졌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직장이 전쟁터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자신만 참고 넘어가면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피해자가 성희롱을 공식화하는 순간부터 조직의 명예를 실추시킨 ‘골칫덩이’로 몰리고 ‘작은 일에 예민하다’는 비판을 받아야 한다. 가해자는 피해자보다 고위직급인 경우에는 회사는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서며 오히려 피해자를 해고하거나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기도 한다. 사건을 주변을 알리거나 회사에 공식적으로 접수, 처리하는 과정에서 2차 피해를 겪는 경우가 많다. 많은 피해자들이 침묵할 수 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대·중소기업 근로자 4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40.2%(181명)가 ‘성희롱 피해를 입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안좋은 소문’(51%·복수응답)을 우려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고용상 불이익’(35.9%)과 ‘처리 과정에서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34.4%)가 뒤를 이었다.


주변의 반응도 냉담했다. 성희롱 피해를 주변에 말했을 경우 ‘공감 및 지지를 받지 못하고 의심 또는 참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응답자가 22%로 집계됐다. ‘불이익 처우에 대한 암시 및 심리적 위축 발언을 들었다’(12.4%) 거나 ‘회사가 ‘개인적 문제이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11.3%) 등의 반응도 적지 않았다.


응답자들의 상당수는 2차 피해 발생 원인으로 ‘회사의 부당한 조치에 대한 법적제재 미흡’(20.4%)과 ‘피해자 보호에 대한 법 또는 제도적 지원 부족’(19.8%)을 꼽았다.


현행 ‘남녀고용평등법’(14조 2항)은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해 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성희롱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해서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대부분의 피해자가 어렵게 성희롱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이후 불이익 때문에 ‘참아도 문제, 말해도 문제’인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성희롱 행위보다 더 심각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성희롱 고충처리・신고・조사 절차를 체계적으로 현행법에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출처: <여성신문>, http://www.womennews.co.kr/news/112165